탁영준의 비디오 설치작 〈목요일엔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는 올해 베니스에서 열린 캡슐의 전시에서 상영됐다
사진 Sangtae Kim,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지난 7월 한국의 대법원은 동성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LGBTQ+로 통칭되는 성소수자(이하 LGBTQ+)의 권리와 그 인식에 대한 한국사회의 수용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퀴어 예술이 한국에서 꽃피우기 시작했다.
정은영 작가는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상황이 그나마 나아졌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그의〈여성국극 프로젝트〉(2008~현재)는 한국의 초기 드래그 공연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명맥만 남은 전통 창극 ‘여성국극’을 기록해 왔다. 이 작품으로 정 작가는 2018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참가했다. 이로써 그는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퀴어 작가가 됐다. 정은영은 “퀴어 예술가가 많아졌고 퀴어성(性)을 다루는 예술이나 퀴어 비평도 활발하다”고 말하며 “물론 양적 증가가 모든 것을 개선해 주지 않지만 이러한 현상은 고무적이다. 유의미한 담론으로 확장될 것”이라는 바람을 내비쳤다.
오인환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퀴어를 주제로 작업한 작가 중 한 명으로 1996년부터 한국의 정체성과 동성애 정체성을 탐구해 왔으며, 향을 사용해 게이 클럽의 이름을 쓰는 작품을 선보였다. 성소수자 활동가이자 작가인 양희지는 2010년대 초부터 ‘허리케인 김치’로 분해 드래그 쇼를 진행하며 동성애 권리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조명하는 홍민키의 영상 작업에는 외국인 남자친구와 결혼할 수 없는 자신의 경험담이 들어있다. 아울러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이강승은 에이즈 문제를 비롯한 퀴어 및 이주의 역사를 성찰하는 작품으로 2023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에 참여했다.
사진 Sangtae Kim,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젊은 작가 중에는 박그림처럼 LGBTQ+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가도 있다. 박 작가는 시적 은유와 전통화 기법으로 퀴어로서의 경험을 표현한다. 또 다른 신진작가 최하늘은 게이의 이상적인 체격을 형상화한 과감한 조각을 제작한다. 그는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선보인다.
서울에 체류 중인 라파엘 라시드 기자는 “한국의 퀴어 예술은 조용하면서도 아주 중요한 성장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분야는 전통적인 시각예술과 사진 장르에서 드래그 행사, 연극, 독립영화 제작으로 전환되며 수년간 변화를 겪어왔다. 볼룸 같은 새로운 하위문화도 인기를 끌고 있다.” 프라이드엑스포와 같은 연례행사는 퀴어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이고 판매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합쳐서 MZ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점차 주도적으로 작품의 창작과 수집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LGBTQ+ 권리를 전적으로 지지하거나 최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 영향력 있는 대중음악 산업은 공식적으로는 순수한 이성애를 표방하지만, BTS같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보이밴드는 남자다움과 남성성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관습적인 태도를 재고하게 만든다.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한국작가 탁영준은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부상하면서 기존의 방송 채널이 소화하지 못한 다수의 퀴어 프로그램이 방영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가 2023년 서울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남성 누드를 포함한 게이 콘텐츠와 관련하여 어떠한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그의 작업을 지지하는 게이 컬렉터 커뮤니티를 만났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기성세대와 보수 집단, 정치인과 종교인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동성애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탁 작가는 “이렇게 말하기는 싫지만, 보수적인 기성세대가 사라지면 선거 결과도 달라질 것”이라며 “일상생활과 정치인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중생활을 한다. 직장을 갔다가 퇴근 후에는 [게이 클럽이 모여있는] 이태원에 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인권 단체와 퀴어 단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박그림의 〈이간(二揀)〉(2024) 작품 부분 이미지. 서울 갤러리 띠오에서 2024년 개최된 작가의 개인전 《사사 四四》에 출품됐다. 작가는 시적 은유와 전통 한국화 기법으로 퀴어의 경험을 드러낸다
제공 @gallerytheo
탁영준의 작품 중에는 기독교 도상에 한국어가 뒤덮인 조각이 있다. 한국어 텍스트는 반(反)동성애 선전 전단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는 2014년 퀴어문화축제에서 종교단체 시위자들이 나눠준 전단지를 처음 접했다. “처음 참가한 프라이드 행사였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어째서 남을 혐오하는 일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00년부터 개최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그간 축제 장소로 사용해 온 서울광장을 지난 2년 동안 사용할 수 없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종교단체의 청원을 받아들인 결과다. 지난해에는 대구시장이 공무원 500명을 동원해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을 저지하려 했다. 라시드 기자는 순수미술이 종교적 분노를 유발하기에는 너무도 입지가 좁다고 지적한다. 그는 “보통 예술의 표현이 보수파나 종교집단의 반대에 부딪히지 않을 정도로만 주목을 끈다면 사실상 큰 진통 없이 성장할 수 있다”며 이는 무엇보다 선두에 선 예술가와 관객 대부분이 젊은 층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그럼에도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고 강조한다. 2020년 1월에 그가 공동기획한 퀴어 차별에 관한 전시 《Pride Over Prejudice》는 서울 팩토리 2에서 “개최될 수 있을 때까지 여러 곳에서 거절당했다.”
최하늘 〈Life as a struggling uncle〉2024
제공 Haneyl Choi. 사진 Kim Sangtae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검열이 존재했다. 공공미술관이나 학교에서는 LGBTQ+와 관련된 레퍼런스나 상징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정은영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관용을 보여주기 위한 표시로 LGBTQ+[이슈]를 활용하기도 한다. 퀴어성의 실천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다.” 그는 현재 대학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문화사업 심사위원으로도 자주 초대받는다고 알려왔다.
정은영은 자신이 유명한 예술가로 부상한 사실이 한국 미술계의 담론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퀴어의 노출도를 높이고 그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퀴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썼다. 앞서 투쟁했던 오인환, 윤주경, 김두진 같은 작가들께 감사드린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변한 속도에 비해, 한국의 법률은 더 더디게 움직였다. 올해 여름 이전까지 한국에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금지법도 없었다. 정 작가는 “한국은 매우 보수적인 나라지만, 변화나 필요성을 느끼면 놀라운 속도로 이를 추진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한국사회의 급진화 척도”라면서도, 이것이 “서구 선진국이 되려는 욕망을 실현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와 동화 정책으로 위장된 세계적 기준이나 시대적 요구를 좇는 데 그칠 수도 있다. 우리 역사가 어디로 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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